오랜만에 제 목소리로 인사를 전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편지
안녕하세요. 퍼블리랜서 운영자 쎄니입니다.
오랜만에 제 목소리로 인사를 전합니다. 문득 2025년의 마지막 뉴스레터만큼은, 그동안 스스로에게 씌워왔던 여러 기준과 형식에서 한 발 비켜서고 싶었습니다. 잘 정돈된 메시지보다, 지금의 저를 구성하는 생각들을 조금은 솔직하게 남겨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2018년 퍼블리랜서를 시작할 때, 퍼블리랜서는 곧 저 자신이었습니다. 편집자이자 독립서점 운영자, 크리에이터로 책 주변의 여러 일을 해온 한 사람이 출판계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시도한 작은 실험, 그 정도로 인식되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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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 지난 지금, 참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누군가를 만나 소속을 밝히면 “퍼블리랜서요? 들어봤어요. 네이버 카페 있는 곳 맞죠?”라는 반응을 더 자주 마주합니다. 저는 점차 배경으로 물러났고, 퍼블리랜서라는 이름은 또렷해진 거죠.
이 변화가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제가 기대했던 방향에 가까웠으니까요. 다만 가끔은 스스로를 우스갯소리로 ‘출판계 꿈나무’라 부르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감각이 오히려 두려움 없는 실행력을 주던 때였지요.
그 사이 제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요즘의 저는 ‘일즐러’보다는 ‘매일 분투하며 살아내는 엄마’ 정체성에 더 가까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책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여전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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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제 삶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퍼블리랜서는 오히려 더 단단한 생명력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전력질주보다는, 가늘고 길게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시시콜콜한 고민을 동료들과 나눌 수 있겠다는 여유도 생겼고요. 그런 마음으로 올해, 조금은 어색하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조금은 힘을 빼고 일상의 단면을 올려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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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나온 김에 고백하자면, SNS는 참 어렵습니다. 최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중소출판사 성장부문 경영지원사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하며 만난 다수의 1인 출판사 운영자들 역시, 가장 큰 고민으로 SNS 운영을 꼽았습니다.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구조상 1인 출판사가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매개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울며 겨자 먹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많은 분들이 같은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모든 메시지가 전략적일 필요도, 모든 게시물이 성과로 환원될 필요도 없다는 거였어요. 오히려 혼자 고민을 곱씹는 대신, 불완전한 생각을 흘려보내고,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감각을 교환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런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실패와 망설임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망의 부재가 1인 출판사의 더 본질적인 어려움처럼 보였습니다. 작은 주체일수록 더 단단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 출판하는 언니들’, ‘ 출판연구학교’, ‘ 비평연대’ 같은 시도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그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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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를 좀 더 곁들이자면, 지난 5년간 웹진 <출판N>의 기획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출판계의 다양한 이슈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솔직히, 올해는 유난히 ‘기쁜 소식’을 찾기 어려운 해였어요. 온라인 서점 해킹 사건, 출판사의 저자 이력 검증 실패, 유통 플랫폼의 불공정 관행 등 마음을 무겁게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지요.
그럼에도, 또 다른 장면들도 마주했습니다. 출판 굿즈를 최초로 조망한 『굿즈주의보』를 만들면서 50여 출판사의 사례를 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책이 텍스트 그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취향과 정체성을 매개로 하는 IP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았습니다. 독자들 역시 이미 그 변화를 즐기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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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러 출판 관련 심사에 참여하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2026 독서 기반 지역 활성화 사업’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지자체들을 직접 방문하며 확인한 건, 예상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책과 독서를 지역 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텍스트 힙’이라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업계 내부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는 한편, 업계 밖에서는 문화자본으로서 ‘책’의 가치가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역설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해외 출판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경험도 의미 깊었습니다. 올해 한국문학 저작권 수출 지원사업 자리에서 만난 제인 로슨(펭귄랜덤하우스 더블데이 편집 디렉터)과의 인터뷰는 이 맥락을 더 넓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한국문학이 이미 영미권 독자들에게 보편적 주제와 독창적 미학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스스로의 언어를 갖고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상상력을 조금만 더 보태면, 출판 시장은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확신도 생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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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주절주절 풀어보았는데요. 기대하셨던 콘텐츠와 결이 다르다고 느끼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렇게, 제 목소리로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꼭 오프라인 모임도 다시 열어보고 싶고요. 보고싶은 얼굴들, 그리고 아직 미지의 동료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모두 건강하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정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
2025년 마지막 날, 쎄니 드림 :)
* 요즈음 민음사 TV 화제의 사내 모임 ‘낮술낭독회’의 이야기를 담은 『낮술, 낭독』을 읽고 있는데, 새해 첫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2017년 사적 모임으로 출발해, 민음사 편집자들의 주말 공동체로 자리 잡기까지 8년의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출판 현장에서 일하거나,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느슨하지만 오래 가는 관계를 꿈꿔본 분들이라면 특히 공감할 장면이 많아요.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술 한 잔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단순한 행위를 통해 일하는 동료가 어떻게 함께 읽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출판 공동체가 지속되는 하나의 방식을 엿보는 듯해서 쫀득쫀득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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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랜서
출판 커뮤니티
* 퍼블리랜서는 'publish(출판하다)+freelancer(전속 계약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합성어로, 출판 프리랜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도 '잠재적 프리랜서'이기에, 넓은 의미에서 편집자, 마케터, 북디자이너, 번역가, 저자, 발행인 등 출판인 모두를 '퍼블리랜서'라고 불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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